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국의 전통주 (문단 편집) ==== 군사독재 시기 ==== || [[파일:밀주단속12.jpg|width=100%]] || || [[밀주]]단속은 [[군사독재#한반도의 군사독재]] 시기에 더욱 강화되었다[* 해당 그림은 밀주 단속원이 가정집에서 몰래 빚은 가양주를 찾아내기 위해 창으로 장독대의 땅 밑을 찔러보는 상황을 그린 것이다.] || [[1960년대]]에 접어들며 식량 사정이 다소 나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쌀 생산량은 늘어나는 인구 부양을 위해서는 부족한 편이었고, [[산업화]]가 진행되어 농업 인구가 줄어들고 도시민 등 비농업 인구가 크게 늘자 농업 생산과 유통의 효율을 최대한 높여 비농업 인구를 부양하는 방향으로 식량 정책의 목표가 정해졌다. 따라서 [[대한민국 제3공화국|제3공화국]]과 [[대한민국 제4공화국|제4공화국]] 시대에 전통주에 대한 규제는 더욱 강해졌다. 이 시기 희석식 소주, 부가물 라거 맥주, 대량으로 수입되는 싸구려 양주 같은 가성비도 높고 세금 붙이기도 좋은 술들을 통해 거둘 수 있는 주세 수익이 필요한 조세당국의 조세 정책과, 본격적으로 산업화를 진행하며 도시 노동자의 낮은 임금에 맞는 낮은 생활비 수준을 유지하고 도시 인구 부양을 위한 식량을 우선 확보해야 하는 경제 당국의 필요, 전통주 금지 정책에 힘입어 앞서 언급한 주류들의 생산과 수입, 유통을 맡아 몸집을 불린 주류 회사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서 '''1980년대에 이르는 상당히 오랜기간 전통주 제조는 크게 제약되었다.''' 1965년 주세법이 개정되며 일부 수출용 제품을 제외한 미곡을 원료로 하는 전통주는 탁주까지도 전부 제조가 금지되었다. 다만 수출용 제품은 예외를 뒀다는 부분에서 알 수 있듯이 해외에 내놓을 대한민국을 대표할 전통주가 있어야 한다는 명분으로 [[금복주]]에서 만드는 [[경주법주]]가 나왔지만[* 이 때 같이 시대를 대표한 술이 [[부산광역시|부산]] [[금정산성 막걸리]]이다.], 그건 브랜드명만 "경주법주"인 도저히 전통주라 할 수 없는 술이었고, 정작 경주에서 [[법주]]를 만드는 명가들은 제조를 금지 당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또한 쌀을 이용한 탁주에 대대적인 규제가 가해지자 [[막걸리]]를 비롯한 탁주들에도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한 밀, 보리 등이 사용되며 크게 품질이 떨어졌고, 이렇게 품질이 크게 떨어진 탁주 특히 막걸리는 희석식 소주와 부가물 라거 등에 밀려 경쟁력을 잃고 시장에서 밀려났다. 그러다가 1977년 식량사정 개선으로 탁주에 쌀 사용이 다시 허가됐고, [[1988년]]에는 [[서울 올림픽]]을 맞이하면서 전통주를 조금이라도 인정해야 할 필요가 생기면서 이 때까지는 밀주의 형태로 이어지던 증류주 및 청주 계열 민속주 가운데 딱 8개를 정해서 판매를 허용했다. 이것이 소위 ''''국가지정 8대 민속주''''이다. 이후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규제가 풀리기 시작하였으나 때마침 터진 [[IMF 금융위기]]로 한국 경제에 타격이 가해지고 희석식 소주와 부가물 라거가 시장의 주류로 다시 한 번 확고히 자리매김 했지만, 동시에 [[밀주]] 형태로 이어져오던 전통주들이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양지로 나오기 시작하고 사라진 전통주들을 복원하거나 전통누룩을 사용한 제법으로 새로운 술들도 개발되기 시작했고,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